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Apple Pippin (문단 편집) == 역사 == || [[파일:external/www.computercloset.org/PippinMain.jpg|width=350]] || [[파일:external/blog-imgs-31-origin.fc2.com/pipinatmark.jpg|width=350]] || || 반다이 피핀 앳마크(Bandai Pippin @Mark) || 애플잭(AppleJack) 게임 컨트롤러 || 1990년대 초반에 하드웨어의 발전과 CD-ROM 드라이브의 보급으로 멀티미디어 시스템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1993년에 [[반다이]]에서는 [[Apple]]에 [[Mac(컴퓨터)|Macintosh]]를 간소화하여 게임기를 만들 것을 제안했고, Apple에서는 Macintosh가 [[IBM PC 호환기종]]에 찌부러지면서 타개책을 바랐기에 멀티미디어 재생기 겸 인터넷 단말기 개방형 표준 규격, 피핀을 개발했다. Apple 컴퓨터에서는 단말기 하드웨어 설계를, 반다이에서는 외관 디자인을 맡았다. 1994년 초쯤에 피핀의 사양은 [[Macintosh Classic#s-3.2|Macintosh Classic II]]을 기반으로 했으나 인터넷 연결 기능 추가와 [[Power Macintosh]] 개발 등으로써 개발이 점점 지체돼서 결국 Power Macintosh의 [[CPU]]인 [[PowerPC]] 603으로 바꾸었다. Apple 컴퓨터는 처음부터 개방형 표준 규격 방식으로 개발했기 때문에 반다이에 피핀 라이선스를 내줬을 뿐, 반다이가 마케팅, 생산, 서드 파티 확보 등을 도맡았으며, 반다이에서는 피핀 생산을 [[미쓰비시전기]]에 맡겼다. 사양은 PowerPC 603 66MHz 프로세서, 6MB의 통합 메모리, 최대 16비트 색상과 640×480 해상도의 그래픽 칩셋에 운영 체제는 시스템 7.5.2를 탑재했으며, 4배속 CD-ROM 드라이브를 채용해 [[CD]]를 매체로 사용한다. 온라인 게임 서비스인 @World(앳월드)도 있었다. [[일본]]에는 '피핀 앳마크(ピピンアットマーク, ピピン@)'라는 이름으로 1996년 3월 28일에 발매했고, 북미에는 '반다이 피핀 앳마크'로 1996년 9월 1일에 발매됐다. [[아타리 쇼크]] 때문에 완전히 망한 뒤로 게임기와 게임 모두 [[일본]]에 의존하게 된 [[미국]]의 게임기 시장에서 새로운 게임기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어느 정도로 받았고, Apple에서 본격적으로 [[32비트]] 게임기 시장 개척을 위해 개발한 듯했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PlayStation(1994)|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 새턴]]이 1994년에 등장해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고, 피핀 출시 얼마 후에 [[닌텐도 64]]까지 출시되면서 3강 체제를 구축했다. 그리고 SNK에서는 4세대 게임기인 [[네오지오]]용 게임 가격이 비싸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1994년에 [[네오지오 CD]]를 출시해 게임 타이틀 가격을 다른 게임기와 비슷하게 맞춘 상황이었다.[* 참고로 가정용 네오지오 게임기(AES)는 피핀과 비슷한 시기인 1997년에 단종됐다. 오락실용(MVS) 생산과 게임 출시는 2004년까지 이루어졌다.] 피핀의 사양은 피핀보다 먼저 발매한 Power Macintosh 5200 LC의 사양보다 더 낮고, 그래서 피핀의 3D 게임들도 다른 게임기용 3D 게임들보다 전혀 나은 것이 없는 실망스러운 그래픽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Apple 특유의 개념 없는 가격 정책 탓에 가격이 무려 '''599달러'''였고[* 2013년 기준의 가치로는 '''889달러'''... --[[iPhone X]]보다 싸다.--], 일본판의 가격은 '''64,800엔'''이었다. 북미 시장의 피핀 출시 당시에 세가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 모두 가격이 199달러였으니 앞서나간 게 가격 하나뿐이었다. 네오지오, [[CD-i]], [[3DO]]보다는 저렴했지만 훨씬 크게 실패했다. 일본에서 실제로는 전화 주문만 받거나 일부 가맹점에서만 판매했기 때문에 찾아보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무엇보다 게임기라면서 가전 제품처럼 팔려고 했는데, 가전 제품 업계의 관습인 리베이트 지급을 거절했다. 할인 판매도 막기 위해 대리점에는 물건을 주지 않고 주문만 대신 받게 하고 물건이 팔리면 수수료를 내주는 식으로 장사를 했다. 이랬으니 팔릴 리가 만무했다. 결국 3개월 뒤인 6월은 모뎀을 제외한 본체와 각종 주변 기기의 점포 판매를 개시했다. Apple에서는 1997년에 [[Mac OS X]] 개발을 위해 [[NeXT]]를 인수하였고, 이에 따라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같은 Macintosh 클론 계획들을 전부 중지시켰다. 반다이 역시 1997년에 피핀을 단종하고 1998년에 피핀 사업을 담당하던 자회사인 '반다이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를 청산했다. [[https://pc.watch.impress.co.jp/docs/article/980227/bandai.htm|#]] 이 과정에 반다이는 무려 270억 엔의 손실을 입었다.[* 그나마 비슷한 시기의 반다이는 [[다마고치]]의 대성공으로 큰 재무 손실을 만회했다. 1997년에 [[세가]]와 합병을 시도했으나 세가와 반다이의 이사회가 모두 반대하면서 결렬됐다. 결국 같은 해에 반다이 창업주 야마시나 나오하루의 장남이며 2대 사장이던 야마시나 마코토 사장은 피핀과 세가-반다이 합병 실패를 책임지고 물러났다.] 반다이에서 이 게임기를 1996년 한 해 동안에 일본에서 20만 대, 미국에서 30만 대가 팔릴 것으로 예상해 [[미쓰비시전기]]에 10만 대 생산을 발주했는데, 공식적으로 1997년 단종까지 '''세계에서 4만 2천 대가 팔렸다.''' 세계에서 가장 적게 팔린 게임기로 선정되기도 했다. 반다이는 1999년 [[휴대용 콘솔 게임기|휴대용 게임기]] 시장에 진출하여 [[원더스완]]을 발매했으나 이마저도 2003년에 철수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